한 사오년 전 쯤이었던 것 같다.

 유럽여행을 하던 중에 성악공부를 하는 절친한 친구를 보러 밀라노에 처음 갔었다. 그때만 해도 스페인, 프랑스, 이탈리아 할 것 없
이 모두 꿈꿔오던 '유럽'의 정취를 자유롭게 누렸었던 것 같다.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살기 불편하다고 불평을 늘어놓기 바빴지만
내 눈엔 그야말로 '배부른 투정' 일 뿐이었다.

 그런데 한국에서 나름 곱게 자란 딸인 그녀가 내 손을 꼭 잡고 가서 나를 깜짝 놀래킨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다름아닌 'COOP'이란
곳이었다. 친구는 넓디넓은 대형마트에서 먼저 침착하게 적어온 메모를 따라 움직였다. 그리고는 휴지, 치약 등 이른바 생필품들을
잔뜩 사며 "오늘 나 좀 도와 줄꺼지?" 하고 윙크를 했다. 그다음 프로모션 상품인 참치 통조림과 올리브오일, 커피 등을 사재기(?)하
기에 이르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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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친구는 유럽스타일(?) 장바구니를, 나는 비워왔던 여행 캐리어를 다정히 끌고서 친구의 아파트까지 꽤 오랜시간을 걸었던 것 같다.
물론 내 여행계획엔 없던 일이었으나, 행복한 미소를 감추지 않는 친구를 보며 나까지 뿌듯해졌다.

 그리고 비로소 그때 그녀에게 이 '장보기'가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.

 그로부터 몇년 뒤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하고, 스스로 모은 돈을 가지고 드디어 내가 삼단 이민가방과 함께 로마 땅을 밟았던 순간,
유럽은 내게 더 이상 아름다운 곳만은 아니었던 것이다.

 오늘 나는 특별 세일 중인 닭고기를 마지막으로 구입하는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. 계산대 앞에 긴 줄을 이으며 들여 다 본 바구니 안
에는 10%싸게 구입한 샴푸 세 개 묶음과, 1.50유로를 절약할 수있는 씨리얼 두개 묶음 등이 들어있다. 모두 때마침 내 구매 리스트에
적어왔던 것들이니 마켓의 상술이라 한들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.

 이번 달에 환율이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내 주변에도 몇몇의 유학생 친구들이 끝내 가방을 싸고 돌아간다고 한다.

 참 마음이 아프다. 그간 어떻게 버텨왔는지 조금이나마나 알기 때문이다.

 그래서 집 앞 작은 슈퍼의 유혹을 뿌리치고 피곤한 몸 이끌고 먼 마트까지 몇 십 분을 걸어오고 또 돌아가는 길에도 미안하고 감사
한마음이 함께 한다.

그리고 오래전 그때 함께 장바구니를 끌며 기뻐했던 친구, 그 미소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졌다.

(글 - 카라, 오케이이탈리아 칼럼부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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